일어나지 않은 것들에 관하여 덜 휘둘리는 방법

Last Updated :
일어나지 않은 것들에 관하여 덜 휘둘리는 방법

얼마 전 약속 장소에 가는 길에 지하철이 갑자기 멈춘 적이 있었어요. 겨우 7분 정도였는데, 머릿속에서는 이미 지각하고, 상대가 기분 나빠하고, 하루 일정이 전부 틀어지는 장면까지 빠르게 지나가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상대도 늦고 있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순간을 겪고 나면 조금 허탈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벌어진 일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더 많이 긴장하고, 더 오래 피곤해질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일어나지 않은 것들에 관하여 생각하는 방식만 조금 바꿔도 하루의 체감 난이도가 꽤 달라집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건 꽤 자연스럽다

먼저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원래 위험을 미리 예측하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시험 전에 떨어질까 봐 걱정하고, 발표 전에 말을 더듬을까 봐 불안하고, 병원 검사를 앞두고 최악의 결과를 떠올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예측이 현실처럼 느껴질 때 생깁니다. 예를 들어 상사가 “잠깐 이야기하자”고 했을 뿐인데, 머릿속에서는 이미 혼나는 장면, 평가가 나빠지는 장면, 심지어 퇴사까지 이어지기도 하죠. 실제 문장은 한 줄인데, 해석은 장편이 됩니다.

이럴 때는 생각을 없애려고 애쓰기보다 이름을 붙이는 편이 낫습니다. “아, 지금 나는 사건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고 있구나.” 이렇게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뒤로 물러납니다. 걱정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걱정이 만든 화면과 실제 상황을 분리하는 느낌입니다.

가능성과 사실을 따로 놓는 방법

불안할 때 가장 먼저 해볼 만한 건 사실과 상상을 나눠 적는 일입니다. 종이에 두 칸을 만들어도 좋고, 휴대폰 메모장에 짧게 써도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 사실: 병원 검사 결과를 아직 받지 않았다.
  • 상상: 결과가 아주 나쁠 수도 있다.
  • 사실: 친구가 답장을 5시간째 하지 않았다.
  • 상상: 내가 뭔가 잘못해서 관계가 어색해졌을 수 있다.
  • 사실: 다음 달 지출이 평소보다 많다.
  • 상상: 돈 관리에 완전히 실패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적어보면 의외로 확실한 사실은 적고, 빈칸을 채운 해석이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물론 가능성을 무시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가능성은 가능성으로 다뤄야지, 확정된 사건처럼 몸 전체로 받아들이면 너무 지칩니다.

숫자를 붙여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이 일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이 100%인가, 50%인가, 10%인가?”라고 물어보면 막연한 불안이 조금 구체적인 크기를 갖습니다. 10%짜리 걱정을 100%짜리 현실처럼 끌어안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도 꽤 많습니다.

대비와 집착은 다르다

일어나지 않은 것들에 관하여 생각하는 일이 전부 나쁜 건 아닙니다. 우산을 챙기는 것도 비가 올 가능성을 생각했기 때문이고, 발표 자료를 한 번 더 확인하는 것도 실수를 줄이기 위한 대비입니다. 문제는 대비가 끝났는데도 마음이 계속 같은 장면을 반복 재생할 때입니다.

저는 이럴 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이 있나?”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할 수 있는 행동이 있으면 작게 움직이고, 없으면 생각을 잠시 내려놓는 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예를 들어 면접 결과가 걱정된다면 감사 메일을 보내거나 다음 지원 공고를 살피는 건 행동입니다. 그런데 이미 보낸 답변을 밤새 떠올리며 표정 하나까지 다시 해석하는 건 대부분 소모에 가깝습니다.

3분짜리 대비 목록 만들기

머릿속에서만 굴리면 걱정은 계속 커집니다. 그래서 시간을 아주 짧게 제한하는 방식이 꽤 잘 맞습니다. 딱 3분만 쓰는 겁니다.

  • 가장 걱정되는 상황을 한 문장으로 쓴다.
  • 그 일이 생겼을 때 바로 할 수 있는 행동을 1~3개 적는다.
  • 지금 미리 해둘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하나만 실행한다.
  • 더 할 일이 없으면 “현재 할 일 없음”이라고 적는다.

이 방법의 좋은 점은 걱정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불안에게 자리를 조금 내주되, 하루 전체를 내주지는 않는 방식입니다. 사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그때그때 처리해냅니다. 아직 오지 않은 장면을 미리 완벽하게 해결하려고 하면, 현재의 체력만 먼저 줄어듭니다.

일어나지 않은 좋은 일도 함께 세어보기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일어나지 않은 나쁜 일은 쉽게 떠올리면서, 일어나지 않은 좋은 일은 잘 세지 않는다는 겁니다. 답장이 늦으면 관계가 틀어진 상상은 빠르게 나오지만, 상대가 바빠서 나중에 다정하게 답할 가능성은 비교적 늦게 떠오릅니다.

미래는 원래 여러 갈래입니다. 그런데 불안할 때는 그 갈래 중 가장 어두운 길만 확대해서 봅니다. 그럴수록 일부러 다른 버전도 하나쯤 만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망할 수도 있다” 옆에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다”를 놓는 겁니다. 이건 억지 긍정이 아니라 시야를 넓히는 일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새 직장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면, 반대편 문장도 같이 써볼 수 있습니다. “처음 두 주는 어색하겠지만, 한 달쯤 지나면 자주 묻는 사람과 익숙한 업무가 생길 수 있다.” 이렇게 말입니다. 문장이 조금 현실적일수록 마음도 덜 반발합니다.

지금의 나를 덜 빼앗기기

일어나지 않은 것들에 관하여 오래 생각하다 보면 가장 아까운 건 시간보다도 현재의 감각입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내일 걱정이 씹히고, 쉬고 있는데 다음 주 일이 어깨에 올라와 있습니다.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계속 다른 날짜를 떠돌죠.

그럴 때는 아주 단순한 감각으로 돌아오는 게 좋습니다. 물 한 잔을 천천히 마시기, 창밖 색을 세 가지 찾기,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느낌을 알아차리기 같은 것들입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현재로 돌아오는 신호를 몸에 보내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저도 여전히 별일 아닌 메시지 하나에 여러 시나리오를 만들 때가 있습니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빨리 알아차리려고 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참고 자료일 수는 있어도, 오늘 하루의 주인이 될 필요는 없으니까요. 미래를 준비하되 현재를 통째로 넘겨주지는 않는 쪽, 저는 그 정도의 거리감이 꽤 현실적인 평온이라고 느낍니다.

일어나지 않은 것들에 관하여 덜 휘둘리는 방법 - 요약
일어나지 않은 것들에 관하여 덜 휘둘리는 방법 | 플레어타임 | 이슈·트렌드 매거진 : https://flaretime.com/14258
플레어타임 © flaretime.com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modoo.io